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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쯧쯧쯧…"
일요일 오후,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신 할아버지와 공원을 산책하던 길이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공원 한 귀퉁이를 보시며 끌끌 혀를 차는 것이었다.
"왜요? 할아버지?"
"저길 좀 봐라. 저 나이를
먹어서도 저런 일을 해야 하다니 아마도 자식들에게 용돈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하니 저렇게라도 벌이를 하는
거지."
할아버지가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서는 어쩐 할아버지가 큰 쓰레기자루를 뒤지고 있었다. 그
자루는 동네 정화위원회에서
아침마다 쓸어모았다가 거두어 가는 쓰레기 자루였다. 그 할아버지는
허름한 옷차림에. 보기에도 가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괜히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저 할아버지가 뭘 하시는 데요?"
"저 자루에서 돈이 될만한 것들을 찾고 있는 게지."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쓰레기에서 돈을 찾다니 말이다. 그 할아버지가
잃어버린 돈을 찾고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할아버지는 병이랑 캔 같은 것을
골라내고 있었다. 더운 오후여서 땀이 흐르는지 목에 걸린 꾀죄죄한 수건으로 이마를
닦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안 돼 보였다. 나는 얼른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그 할아버지가 뒤지는
자루 주위에는 파리들이
윙윙대며 날고 있었고, 냄새도 심하게 났다.
"그럼, 저 할아버지가 환경 미화원이에요?"
"환경 미화원은 무슨. 누가 저런
노인을 월급 주고 쓰겠냐? 쯧쯧! 저기서 골라낸 것들을 팔아서
용돈이라도 쓰려는 게지."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어쩌면 그 할아버지는 생활비에
보태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지저분한 옷차림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다.
할아버지가
입고 있는 옷은 우리 할아버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우리 할아버지가 시골할아버지라 신사답지
못하다고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계절에 맞는 옷은 입으신다. 시골 할아버지라 깔끔하고 멋진 차림은 아니지만
여름에는
시원한 모시옷을 입으신다. 그런데 쓰레기 자루를 뒤지는 할아버지의 옷은 겨울옷
같았다. 원래 시커먼 색인지, 더러워져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 긴 옷이었다.
"에이고, 같이 늙는 처지에 마음이 아프구먼. 그만 가자꾸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를 따라 공원을 나왔다. 나오면서도 자꾸 뒤가 돌아다
보였다. 할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용돈도 듬뿍듬뿍 주신다. 나는 그
돈이 모두 아빠랑 엄마가
할아버지께 용돈을 넉넉하게 드려서 그런 줄 알았다. 엄마가 매달 할아버지께 용돈을 보내 드는걸
보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는 자식이 없으신가 봐요"
"자식이 있으면 왜? 요즘이야 어디 부모 먹여 살리는 자식이
있다더냐? 다 저 혼자 큰 줄 알지."
"아빤 안 그렇잖아요? 할아버지 용돈도 꼬박꼬박 드리잖아요."
"네 아비? 그야 그렇지만
하기야 그 돈으로 먹고살려면 나도 눈치 꽤나 보일걸."
"…? "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께서는 농어촌연금을 받고 계신다고
하셨다. 처음에 나라에서 들라고 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들었는데 그 돈이 지금은 아빠보다 더
마음을 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돈이 있기 때문에 아빠께서 드리는 용돈도 더 떳떳이 받는다는
말씀도 하셨다. 아빠가 드리는
용돈보다 조금 더 많은 연금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실 때는 괜히
뜨끔한 생각도 들었다.
'아빠는 매달 용돈을 넉넉하게
드리잖아요?' 했으면 얼마나 민망했을까. 나는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고 당당해 보이셨다.
지금까지 나는 할아버지께서 아들을 잘
키워서 당당하게 사시는 줄 알았다. 실질적으로
할아버지께 의지가 되는 것은 국민연금 혜택이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엔 나도 내 돈을 뺏기는 줄 알았지 뭐냐? 그런데 웬만한 저금보다 낫더라니까 "
할아버지는 사람은 앞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아주 잘 알게 되셨다고 한다. 그래도 요즘에는 나라에서 강제로 돈을 거두니까
차라리 잘 된
것이라고도 하셨다. 아마 아빠도 월급에서 꼬박꼬박 넣고 계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저
없는 셈치고 내다보면
언젠가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학교에서 국민연금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께서 나이가 들어서 일을 할 수
없을 때 받는 노령연금, 장애를 당했을 때 받는 장애연금, 내가 죽고 난 뒤에 남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유족연금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때만 해도 나는 국민연금이 내 주변에 이런
도움을 주는 힘이 되고 있는 줄을 몰랐다.
나는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다. 그래서 국민연금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다. 내가 돈을
벌면 가입하겠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돈을 벌면 누구나 가입이
되는 것이니까 나도 되겠지,
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다. 국민연금의 발전이 있으려면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을 보면서 판단력을 키워야 한다. 아무리 어려도 언젠가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될 테니까 말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할아버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정말 불쌍해 보이던 공원의 할아버지.
참으로 비교되는 두 할아버지를 본 일요일이었다. 두 할아버지 덕분에 내가 어른이 된 것 같다.
공원의 할아버지 같은 사람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 보험금을 착실하게 내야 할 것 같다.
그 할아버지의 옷차림이 아직도 내 눈앞을 흐릿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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