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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참 아버지와 성격이 맞지 않는 자식이었고, 아버지의 성격을 싫어하는
아들이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한 마디로 내가 봤을 때 아버지는 지독히
사회에 쓸모없는 명예에 죽고 명예에 사는 분이셨다. 하지만 난 달랐다. 적당히 세상과도 타협하고 어느 정도의 거짓말과 가식, 그리고 어느 정도의
이기심은 참 필요하단 마음을 갖고 있었다.
좀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는 아버지랑은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일방적으로
대화를 피해 왔다. 그렇게 지금까지 근 5-6년 간 아버지와 나눈 대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그러던 지난 봄,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시간을 특별히 할애해서 마련 됐다기 보다 나의 철없는
참견과 짧은 생각으로 빚어진 작은 충돌로 시작된 대화였다.
“그래서, 당신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학교에서 실시하는
보충이 갑자기 취소가 되어 집에 일찍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내 귓가에 꽂힌 것은 처음으로 들어보는 엄마를 향한 아버지의
언짢은 음성이었다. 괜히 안방 문 가까이에 서서 부모님의 대화를 엿들어 보니, 세금과 비슷한 국민연금이라나 무슨 보험료 같은 걸 몇 개월 내지
않고 연체를 했었던 게 아버지 눈에 발각 된 것 같았다.
평소 아버지의 꼿꼿한 신념에 삐딱선을 타고 있던 나는 어디서 그런
버르장머리가 나왔는지 안방 문을 확 열어 제치고 참견을 했다.
“그게 뭐 어때서요?”
그 동안 가슴 속에 쌓였던 원망
가득한 한마디였다. IMF가 터지고 한창 번창하던 아버지 사업도 거의 문을 닫을 위기에 까지 놓이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는 대출이다 어음이다
뭐다로 지저분하게 아버지 이름 석자에 어떤 흠집도 내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감수 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일이
크게 벌어 질 상 싶어 부릅뜨고 아버지를 바라보던 눈을 질끔 감았는데 잠시 후 아버지는 조금은 떨리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서재로 부르셨다.
가방만 내려놓은 채 바로 서재로 따라 들어가 우리 부자는 한참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아버지가 먼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셨다.
“음, 지금까지 한번도 진욱이한테 할아버지 돌아가신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오늘 그 이야기
좀 해 볼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아버지가 중학교 때였다. 풍족하게 생계 걱정 없이 살아오신 할아버지가 전쟁이다 뭐다 갑자기 없는 살림에
많은 식구들을 거느리고 사시느라 참 많이 힘들어 하셨다. 남의 집 품을 팔면서 일을 해 오시다 점점 쇠약 해 지셨지. 점점 말라가고 식욕도 점점
떨어지는 할아버지를 할머니와 함께 지켜보면서 연세가 많으셔서 그랬겠거니 했는데, 돌아가신 후에야 알아봤더니 당뇨로 너무 많이 고생하셨던 거야.
당신의 몸에 싹튼 병명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산골 마을에서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그 짐은 고스란히 할머니와 내게 떨어졌지.
그 땐 참 막막했단다. 열댓 개의 어린 눈들이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다는 버거움에 참 괴로운 시간들이었어... 아버지의 유년시절만 아팠던 거면
지금까지도 슬프진 않았을텐데 그 가난이란 이름의 생활은 할머니와 내게 멈추지 않고 너희 고모와 삼촌들에게까지 줄줄이 이어졌었던 것이 지금까지도
아버지 가슴속에 큰 슬픔으로 남아있단다. 진욱아! 그 때 아버진 참 많은 걸 깨달았단다. 한 가정을 꾸리
게 된다면 처자식에게 항상 내일을
준비하고 열어 줄 수 있는 가장이 되어야겠다고...”
항상 과묵하시던 아버지를 통해 지금껏 듣지 못했던 옛이야기들과 당신의 속마음을
듣고 난 순간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입을 꽉 다물었지만 어찌 막을 수
없는 콧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바라만 봐야했다. 그런데, 내 입은 왜 그리도 방정맞고 철이 없는지... 아버지의 마음을 지난 날 나보다 백배
천배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삐딱한 질문이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그게... 세금 내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진욱아, 예전에도 몇 번 엄마나 누나와 네게 말했지만 국민연금은 세금이 아니야. 사람들이 매달 꼬박꼬박 적지 않은
돈이 나가니까 세금처럼 생각하고 부담스럽게 그리고 불쾌하게 생각 되는데... 그런 게 아니라는 말 한 번 더 강조하고 싶구나... 국민연금이
뭔지는 정확히 알고 있니?”
“아뇨...”
사실 그랬다. 선생님들께서도 자신의 월급의 일정부분 연금으로 지출하고 있단
말을 얼핏 들은 것과 엄마가 가끔씩 고지서가 날라 올 때마다 홀로 푸념하고 있는 모습을 본 게 국민연금이라는 단어에 정의 내릴 수 있는
전부였다.
“음... 조금이라도 쉽게 설명하자면 국민연금제도는 이자가 매우 높은 정기적금과 비슷한 거야. 평소에 꾸준히 돈을 넣어
두고 나중에 아버지가 직업을 가질만한 힘이 없거나 노환이 생길쯤부터 평생토록 적절하게 도움을 주는 제도란다. 아버진 이 연금에 가입자가 되고 그
일정 액수를 넣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니? 아, 내가 지금 진욱이 미영이 아빠였고 오늘도 아빠구나라는 생각, 그리고 항상 넉넉하게는 키우지
못했지만 최소한 미래에 자식들에게 짐이 될 수 있는 부담을 덜어 주려고 애쓰는 가장이구나라는 뿌듯함을 갖고 살고 싶어. 아버지 마음, 네가 잘
이해했다고 믿어도 될까?”
그렇게 아버지와 내가 진지한 대화를 나눈 후부터 조금씩 난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후 서로가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통해 난 아버지가 나와 누나에게 자주 말씀하셨던, 사람을 이름을 남긴다는 구절에 들어있는
우리 아버지 식 그 ‘이름’을 이젠 해석 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대입 준비로 신문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말을 참
많이 보게 된다. 국민연금이 40-50년 후면 그 자금이 바닥이 날 거라느니, 이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큰 손해를 볼 거라느니,
국민연금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느니 등...
하지만 항상 기금운용 현황과 사회 환원 프로그램 내역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는 등의 투명성 있는 자금운영방식과 선진국에 비해 저렴한 비율의 연금보험료로 선진 국가들의 연금프로그램에 속한 전 혜택을 모든 국민들에게
제공하려는 많은 노력들은 왜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않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지금의 침체된 사회 분위기를 이용한 사람들의 심리적인 반감을 조장하는
글들이 개중에 너무 많아 안타깝다.
언젠가 ‘나무 심는 사람’이라는 영상동화를 본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주인공인 나무를 심는
사람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황폐한 불모지에 평생토록 씨앗을 심어나간다. 정말 한심 해 보일 정도로 꿋꿋하게 나무의 시작이 되는 씨앗을
심었는데 그 씨앗이 새싹이 되고 나무가 되어 또 풍성한 씨앗들을 낳아 바람을 통해 더 넓은 곳으로 씨앗들을 퍼트리기 시작하면서 한 산을 온통
푸른색으로 물들였다는 일화다. 우리 모두가 이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순간의 감정이나 재빠른 결과에만 연연하지 않고 국민연금이라는 씨앗을
통해 푸르른 내일을 차분히 준비해 나가는 나무 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바로,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들에게
편안한 그리고 준비된 내일을 맞을 수 있도록 국민연금에 애착을 기울이시는 우리아버지처럼 말이다.
끝으로, 존경하는 내 아버지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든든한 이름, 국민연금이 앞으로 영원히 나 김진욱이가 당당한 사회인이 되고, 또 내 자손들이 대대로 이 땅의 사회인으로 거듭
날 때까지 항상 나와 우리 가족들을 지켜주고 물려주고 싶은 이름으로 불려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국민연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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